심판의 전령 - 31장 –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

31장 –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 1. “위에 더 큰 사람 있어요” – 익명의 댓글 하나 〈사라진 증언들, 다시 말을 찾다〉가 온라인에 올라간 지 나흘째 되는 날. 기사는 폭발적인 화제는 아니었지만, 오래, 묵직하게 읽히고 있었다. 포털 상단에서 슬그머니 밀려난 뒤에도 댓글 창에는 늦게 기사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국을 남겼다. – “이 기사 세 번 읽었습니다. 저장도 했어요.” – “예전에 제 기사도 하루 만에 내려갔는데, 그때 기분이 떠올라서 울었습니다.” – “학교, 직장, 공사장… 결국 다 구조 문제네요.” 스크롤을 내리던 서연의 손이 한 줄에서 멈췄다. – “기자님, 이 정도는 아직 ‘아랫선’입니다.” 닉네임은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조합이었다. – “학교, 직장, 현장 기사 지우던 O.T는 ‘손’에 불과해요.” – “진짜는 면책 구조 를 설계한 사람입니다.” – “그 사람은 기사에 이름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.” – “법에도, 속기록에도, 재판 기록에도 이름이 없습니다.” – “모두가 존재를 아는데도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.” – “기자님이 ‘이름과 구조’를 쓰기 시작했으니—” 마지막 줄. – “언젠가 그 이름 없는 사람 에 대해 쓰게 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.” 읽는 동안 서연의 등줄기를 서늘한 것이 한 줄 타고 내려갔다. 모두가 존재를 아는데,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. 구조를 설계하고, 면책을 설계하고, 책임을 나눠 숨기는 사람. ‘이름 없는 사람’. 그녀는 댓글 작성자에게 조심스럽게 쪽지를 보냈다. – “안녕하세요, 기자 윤서연입니다. 방금 기사에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.” – “혹시 말씀하신 그 ‘면책 구조’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?” 수 분 뒤 짧은 답장이 왔다. ...

심판의 전령 - 30장 – 사라진 증언, 다시 말을 찾는 사람들

30장 – 사라진 증언, 다시 말을 찾는 사람들 1. “그 기사 이후로…” – 괴담처럼 떠도는 한 문장 오태석 상무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, 신문사 안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떠돌았다. 하나는 공식적이고, 합리적이며, 병원 진단서가 보증하는 이야기였다. “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, 급성 심장마비가 온 것 같더라.” 또 하나는 복도와 흡연실에서만 조용히 오르내리는 다른 이야기였다. “마지막에 무슨 기사 하나를 되살리고 있다가—” “그 순간 그냥 탁 쓰러졌대.” “그래서 그 기사에 뭐가 있긴 한 거 아냐?” 이야기 속 “그 기사”는 대부분 정확한 제목도 모르고 있었다. 다만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 돌아다녔다. – “청문회 기사였대.” – “구조랑 책임이랑 이름 얘기하는 거.” – “지웠다가, 다시 살아난 글이라던데.” 윤 서연은 누가 이름을 대지 않아도 그 기사가 자기 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. 아침 출근길,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. “그래도 이상하긴 하다.” “기사 하나 살렸다고 사람이 죽기까지 해?” 다른 사람이 낮게 대답했다. “죽게 만든 건 그 기사 하나가 아니겠지.” “여태까지 죽여 온 기사들이 그 사람 위에 쌓여 있었겠지.” 그 말이 서연 귀에 작게 꽂혔다. 죽여 온 기사들. 지워 온 증언들. 그 위에 마지막 한 문장이 얹혔을 뿐.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, 모두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. 오직 한 사람만이 그 말의 무게를 끝까지 들고 뉴스부 문을 열고 들어갔다. 2. “기자님, 제 이야기도 지워졌어요” – 첫 번째 메일 메일함에 눈에 띄는 제목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. [독자제보] 예전에 기사 한 번 떴다가 사라진 사람입니다 발신인 주소는 낯선 이름이었다.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, 예전에 어렴풋이 어디선가 지나쳐 본 듯한 느낌이었...